포스트-노동
세계화된 신체와 알고리즘의 풍경
근육의 시대에서 기계의 시대로, 다시 알고리즘의 시대로. 인류 문명의 궤적은 노동의 육체성이 어떻게 변형되고 착취되며 마침내 비가시화되어 왔는가에 관한 자연사(自然史)의 기록이다. 한나 아렌트는 노동을 생명 유지를 위해 소진될 뿐 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활동이라 불렀다. 문명이란 그 소진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며, 이 전시가 응시하는 것은 정확히 그 소진의 흔적들이다. 노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자본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소비자의 눈에서 지워졌을 뿐이다. 사진은 이 삭제에 저항해 온 가장 오래된 기술이자, 오늘날에는 그 삭제에 가담하기도 하는 기술이다.
루이스 하인(Lewis Hine)이 1913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블러프턴의 통조림 공장에서 만난 일곱 살 굴 까기 노동자의 캡션은 이렇게 적혀 있다. “일곱 살 로지. 정규 굴 까기공. 2년째. 문맹. 하루 종일 일함.” 한 세기 뒤 한 연구자가 인구조사 기록을 거슬러, 그녀의 이름이 로즈 베르디치(Rose Berdych)였고 1920년에는 학교에 다니며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1990년 여든넷에 세상을 떠났음을 밝혀냈다. 캡션이 ‘문맹’이라고만 적었던 자리에 한 사람의 생애 전체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윤리는 고발의 강도가 아니라 이 복원 가능성 안에 있다. 한 세기 뒤 마크 네빌(Mark Neville)의 런던은 같은 질문을 도시의 단면으로 옮긴다. 사우스켄싱턴 클럽에서 춤추는 금융인과 그을음을 뒤집어쓴 토트넘의 아이들이 같은 조명, 같은 필름으로 촬영될 때, 산업자본주의의 공장과 금융자본주의의 도시는 서로 다른 시대가 아니라 노동의 비용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동일한 체제의 두 장면이 된다. -중략
DAEJEON PHOTO FESTIVAL 감독 강제욱

